하나님의교회(안증회)는 사망에 종노릇하는 인류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위하여 성경의 예언따라 이 땅에 두 번째 임하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과 성령의 신부되신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를 믿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안상홍님&하늘어머니
재림에 관한 세부적 연구
‘성서 중심의 회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6세기 종교개혁을 주도하여 설립된 개신교는 오늘날 수많은 분파를 이루고 있다. 이는 성경을 해석하는 견해 차이로 인한 분열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분파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없다. 동일한 성경 아래 서로 다른 교리를 지닌 다수의 교파들이 정통그룹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은 초대교회의 시각에서 어떤 형태로든 합리화될 수 없으며 용인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교계에서 끊임없는 논란이 일고 있는 내용은 재림 그리스도에 관한 부분이다. 재림 그리스도의 등장 시기와 모습은 교계의 화두이자 뜨거운 감자다. 분열된 기독교단체들은 상호간에 다른 의견을 표명하고 있지만 유독 재림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부분에서는 거의 모든 종파가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교회는 재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주장하여 기득권 기독교단체와 대치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 초림 이후 이방 교리가 교회 내로 유입되어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전개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부분을 ‘재림’이라고 밝히는 반면, 대다수 기득권단체들은 예수 초림 후 심판주의 모습을‘재림’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과연 재림이란 ‘육신으로 오셔서 구원의 길을 여시는 것’인지 아니면 ‘최후 심판주의 입장으로 오시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 육신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 명확한 정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임하시는 당위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림 그리스도께서 어떤 모습으로 임하실 것인지에 대한 관심과 의견이 상충하는 가운데 그에 관한 내용을 성서적 근거를 통해 집중 조명해보자.
1. ‘육체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주’
2000년 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기다려왔던 메시아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한 오류는 종교지도자들 나름대로 마음속에 상상했던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기대감과 어리석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즉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언 따라 육체로 임하신 하나님을 육신적인 안목으로 판단하여 깨닫지 못한 결과였다. 지나간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재림에 대한 사항들을 고찰하여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1) 육체의 재림이라는 새로운 발견
‘재림(再臨)’이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단체들은 마태복음 24장의“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는 기록은 ‘영광의 모습을 갖춘 심판주 성격의 그리스도’임을 주장하고 있다. 즉 2000년 전 처음 임하셨던 그리스도께서 최종 심판의 목적으로 다시 임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 해석이 옳은 것인지 먼저 성경에 나타난 재림에 관한 근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재림에 대한 근거
[마 24:3-3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눅 21:7-31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요 14:25-26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히 9:27-28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기득권 종교단체들은 히브리서 9장의 내용을 초림에 관한 부분이라고 일축하고 있지만 히브리서의 저작 시기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기록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즉‘나타나시리라’는 표현은 향후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의미의 미래지향적인 표현이므로 결코 초림 예수님은 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은 영으로는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고 있기에(마 28:20) 그리스도께서 영체로 임하셨던 수(數)를 정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하여‘두 번째’라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 히브리서 9장의 ‘구원을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는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육체로 오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인 것이다.
2)‘두 번째 성육신의 재림’과‘최후의 심판주’
성경은 그리스도의 임하실 세 가지 모습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2000년 전 처음 임하신 초림, 두 번째 오신다는 재림, 최종 심판주에 대한 예언이다. 초림에 대한 내용은 누구나 이해하고 있지만, 초림 이후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육체의 재림과 최종 심판주에 대한 부분은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두 번째 오신다는 의미의‘재림’은 어떤 목적과 모습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① 육체의 재림과 최종 심판주의 상반된 목적
[히 9:28 그리스도도 …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마 24:30-31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두 번째 오시는 재림(再臨)의 목적은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을 통해‘인류를 살리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택하신 자들을 모으신다’는 말씀은 이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목적으로 임하실 때에는 인류를 모을 필요가 없다. 곧 재림의 목적은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는 구원의 목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최종 심판주의 목적을 살펴보자.
[살후 1:7-10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 형벌을 주시리니… 그날에 강림하사…]
‘맹렬한 화염으로 형벌을 내리시는 최후의 심판주’와‘구원을 주시기 위한 재림’은 그 목적에서 엄격한 차이가 있다.
그동안 구원을 위한 재림에 관한 내용은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가려졌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심판하시기 위한 심판주의 내용을 재림이라는 명칭으로 오인해 왔던 것이다. 재림에 대한 지식이 없든지 아니면 재림에 대한 내용을 은폐했든지 허울만 재림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심판주의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② 육체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주의 상반된 모습과 성격
[마 24:30-31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예언되어 있다. 구름을 이루는 결정체는‘물’이다. 그러나 최후의 심판주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의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 형벌을 주시리니… 그날에 강림하사” 하신 말씀에서 심판주의 ‘불’은 재림주의 ‘물’의 성격과는 대조적이다. 재림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24장과 동일한 내용의 누가복음 21장에서는‘인자가 구름 타고 오실 무렵 그리스도인들의 구속이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다. 즉 구름 타고 오실 때에 구원사역이 단시간에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구속의 시간이 근접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택하신 자들을 ‘모으신다’는 내용은 누가 보기에도 심판주의 성격과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재림하시는 목적은 일순간에 내리는 불 심판의 성격이 아닌 백성들을 모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재림을 예언한 누가복음 17장에서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지니라’하시었다.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될 것이라는 내용을 통해 인자의 모습은 영광의 모습이 아니며, 단시일에 재림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반드시 육신의 모습으로 오셔야 성립되는 부분인 것이다. 누가복음 17장의 모습이 최후의 심판주를 나타낸다면 심판 이후에 또다시 고난과 이 세대에 버림을 받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2. 육체의 재림의 필요성
재림에 관한 문제 인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임하셔야 하는 당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당부하신 마지막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라’는 내용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알려주신 복음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행하기를 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직접 교훈해주신 내용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절대적인 교리의 기준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떤 규례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1) 초림 그리스도의 가르침 연구
[눅 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 서시매]
[마 26:17-19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위 내용을 통해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주간절기(週間節氣)로 안식일을 지키고, 연간절기(年間節氣)로 유월절을 지키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규례이며 그리스도께서 분부한 내용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득권 종교단체들은 주간절기로 일요일 예배를 지키며 크리스마스를 연간절기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교계와 일반인들에게는 기독교의 보편적인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을 통해 초대 기독교의 교리와 기득권 종교단체의 교리가 일치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어떠한 근거로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를 지키는지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2) 초대교회 교리의 훼손과 이방풍습의 유입-주입식 교육의 병폐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2000년 전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초대교회의 신앙과 절기가 변질되고 왜곡된 이교적 관습이다. 수많은 교파가 존재하는 내용을 보더라도 교계의 현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있음을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즉 초림 이후 초대교회의 신앙과 전통은 변질되어 성경에 없는 그릇된 복음들이 난무하고 있다.
♠ 예배의 시기로는 주(週) 예배로서 안식일 예배가 이 시기까지 계속되었으나, 말기에 점차로 주의 첫날 즉 일요일로 대용케 되었다.- 송낙원, 교회사, 이건사, 101쪽
♠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의무의 예를 보자. 이는 물론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의 하나이지만 성서에서는 그에 대한 명백한 구절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의 안식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기본스 추기경 저, 장면 역, 교부들의 신앙, 가톨릭출판사, 108쪽
♠ 기독교회는 많은 이방 사상과 상징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태양 숭배로부터 예수의 탄생일이 태양제의 날인 12월25일로 정해지게 되었다. 12월 17-21일 사이의 겨울 축제 때에는 흥겹게 놀고 선물을 교환하고 후에 성탄절 축제의 전형적인 것이 된 촛불을 켰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태양 숭배에 참여했는데 5세기 중엽에 교황 레오 1세는 베드로 회당에 들어가기 전에 태양에게 절하기 위해 돌아섰던 숭배자들을 비난하였다.- 교회사 핸드북, 생명의말씀사, 기독교와 이교적 관습, 131쪽
성경은 하나님의 규례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계명을 알려주시고 친히 본보여 주셨지만 사도시대 이후 인간의 악한 마음은 성경의 기록을 무시하고 그 계명들을 왜곡시키고 변질시켰다. 초대교회의 규례인 안식일이 사라지고 태양신 교리인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를 끌어들였는데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내용이다. 즉 역사에 기록된 종교암흑기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학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훼손하는 일이 병행되었던 것이다. 이에 성경은 영적인 공황상태를 기록하고 있다.
[마 15:3-9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 …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오늘날 교계는 성경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신앙이 되어버렸다.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라는 주입식 교육의 병폐로 이러한 거짓 계명들은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인 진리로 인식된 상태다. 성경의 계명을 무시하고 이 세상 풍습을 받아들이는 행태에서 돌이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안식일과 유월절 등의 진리를 가르치시고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뜻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이유이자 목적이셨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 가미되어 생성된, 그릇된 복음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2000년 전 그리스도께서 본보여주신 안식일과 유월절 등의 진리를 새롭게 가르치시고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던 것이다.
혼탁한 현실 속에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대해야 할 대상을 알려주고 있다.
[계 5:2-5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고전 4:5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허락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야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진리가 사라진 현실 속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당위성이 제시되었고 인류인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을 친히 전달하시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필연적이다. 사람이 만든 규례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초대교회의 진리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야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도 2000년 전과 동일하게 육체로 오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이라 볼 수 있다.
3) 하나님의 교회 육체의 재림을 부인하는 원인
예수 초림 당시 유대인과 성경을 연구했던 종교지도자들마저 자신들이 기다려왔던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신성모독죄를 적용하여 십자가에 못 박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하다고 자부하였지만 실제적으로 예언 따라 육체로 임하신 하나님을 깨닫지 못했다. 성경의 예언과 가르침을 신뢰하기보다는 나름대로 마음속에 그려왔던 그리스도에 대한 잘못된 기대감이 오히려 비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엘리야가 예수님보다 먼저 올 것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엘리야가 불수레를 타고 회리바람에 싸여 승천했던 역사(왕하 2:11)를 들먹이며 엘리야는 반드시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라 기대했다. 결국 하늘 구름만 쳐다보고 있었던 그들은 육체로 나타난 엘리야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침례 요한)이니라]
이러한 잘못된 믿음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그리스도를 육신적인 안목으로 바라보면서 부정적인 인식만을 앞세웠다.
[마 13:55-57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요 7: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그리스도께서는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알려주시고 친히 본보여 주셨지만 사도시대 이후 인간의 악한 마음은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변질시켰다. 하나님의 규례인 안식일이 사라지고 태양신 교리인 일요일 예배가 기독교 내에 유입되었다. 역사에 기록된 종교암흑기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학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훼손하는 일이 병행되었던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언젠가부터 여러 곳에서 많은 종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고 현재 수백 개의 교파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교리의 특색을 내세우며 시기와 갈등 속에 서로가 진리임을 외치며 여러 이해관계 속에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성경에 없는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이들은 마치 이러한 교리들이 2000년 전 예수님의 가르침이라 위장하며 함구하고 있다. 때로는‘성경에는 없지만’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보편적인 통념만을 내세워 성경에 없는 복음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고 종교암흑기에 진리가 사라진 사실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현재 기득권 종교단체가 지키는 일요일 예배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내용과 동일한 맥락인 것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변경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내용은 성경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삼상 15: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만일 초대교회 이후 교리가 변경되었다면 그리스도의 행함은 헛된 것이 된다.
교리 논란은 성경에 없는 계명을 별다른 문제없이 지켜오다가 안식일이 성경적이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합당하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촉발되었다. 따라서 성경에 명시된 안식일과 유월절을 누가 새롭게 정립하였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리실 것(요 16:13)”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재림 그리스도라면 하나님의 것을 전하고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와 같은 교리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지켜오던 종교인들은 현재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재림에 대한 부분을 반드시 부인해야만 하는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예수 그리스도만을 외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을 예언하며“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하시었다. 오늘날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는데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지는 않는다. 이는 재림하셔서 새롭게 각인되어야 할 예수님의 새로운 이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볼 수 있다.
[계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하나님의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 시대 그대로 전해주시기 위해 다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를 믿는다.
기득권세력이 주장하는 구원의 역사는 육체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초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시기와 마지막 심판주이며, 반면 하나님의 교회가 주장하는 구원의 역사는 육체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진리가 훼손된 종교암흑시대, 초대교회를 회복하기 위한 육체의 재림, 육체로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시기, 마지막 심판주이다.
만일 기득권세력이 주장하는 구원의 역사가 온당한 것이라면 초림 예수님이 전한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는 초대교회 진리가 훼손된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단서이다.
3. 성경을 통해 바라본 재림 그리스도의 등장 시기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하는 시기에 대해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식의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으로 그리스도의 오시는 모습과 그리스도임을 증명하는 근거, 재림 그리스도의 등장 시기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증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님 탄생하심을 기원으로 삼는 서기(서력기원)를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는 시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임하시는 시기는 언제일까? 마태복음 24장에는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통해 초림 예수님 이후 재림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시기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마 24: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제자들이 ‘주의 임하심’에 대해서 묻고 있다. 이는 재림 그리스도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나타날 여러 징조들이 동일한 시대에 전개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같은 장 7절에서 세상 끝 징조에 대해 열거하고 있는데, 나라와 나라 사이의 분쟁과 기근, 지진 등의 많은 재앙과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계명을 전하지 않는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 하나님의 법과 불법이 성행하는 때가 재림 그리스도께서 임하실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또 다른 예언의 말씀을 통해 재림 그리스도의 등장하시는 정확한 시기를 알려주시고 있다.
[마 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이 많이 있겠지만 어떤 내용을 배우라고 직접적으로 지목하시고 강조하신 대목은 오직 이 내용뿐이다. 그만큼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한 말씀은 무척 중요하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국화(國花)가 있다. 성경의 여러 기록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내지는 그 민족을 상징하고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를 배우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죽은 줄 알았던 메마른 나무의 형상에서 새순이 돋는 과정은 무화과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이 죽었다가 소생하는 전반적 역사를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무화과나무의 생명 소생의 시점이 그리스도께서 임하실 예언의 시기, 재림주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알지 못하고서는 재림을 논하기가 어렵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재건의 결과를 대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의 행적 중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구체적으로 암시하신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막 11:11-21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여름에 포도가 나고 가을에 감이 열리는 것은 우둔한 인생들도 인지하고 있다. 하물며 창조주이신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열리는 시기를 모르실 리가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화과의 때도 아닌데 열매를 구하지 못하자 무화과나무에 의도적인 저주를 내리셨다. 잘못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과 자비가 없는 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의사를 비치신 것이다.
이스라엘 장래를 실물적 교훈으로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눅 13:6-7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에 삼 년간 복음을 전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거부하였고 끝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 무화과나무의 실과를 구하지 못하였으니 찍어버리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주시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나라가 어떻게 멸망받는지 직접적 심판의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눅 21:20-23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어떠한 군대에 의해서 포위당하는 시점이 있을 것을 알리시고 예루살렘에 거하는 이들에게 도피할 수 있는 기한을 허락하신다. 이 예언대로 AD 68년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된다. 그러나 본국의 네로 황제의 자살소동으로 내란진압을 하기 위해 로마군대는 철수한다. 이때 두 부류의 사람들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용맹으로 로마군이 철수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예루살렘 성내에 안주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청종했던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펠라성으로 도피했다.
[눅 21:24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로마군대가 철수한 지 2년 후인 AD 70, 예루살렘은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2차 포위되었고 예루살렘성은 함락당하고 말았다. AD 68년에 2년간의 회개의 기간을 두셨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예루살렘은 110만 명의 사망자와 97000명의 포로가 발생했다. 결국 예수님의 예언에 따라 AD 70년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당하여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떠도는 유랑민족이 되었다.
♣ 예루살렘 멸망
* 로마정부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6만 명의 군대를 주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 했으나 네로의 자살로 귀환. * 디도의 출정(70년 4월)-성을 포위하니 외부와 교류되지 않아 식량 결핍으로 고난당함 * 멸망의 결과-70년 9월 8일에 함락 * 사망자 110만 명, 포로 9만 7천 명-간추린 교회사, 세종문화사, 이스라엘의 멸망, 25쪽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는 말씀을 통해 정한 기한이 지나면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알려주셨다. 마침내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 수상에 의해 이스라엘의 독립이 전 세계에 선언되면서 멸망한 지 1900년의 세월이 지난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 30일은 유대력에 따르면 1948년 5월 14일 독립 선포일로부터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3천만 달러를 들여 1년 전부터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해왔다. 50년 동안 이스라엘은 불모의 사막을 녹지로 바꾸는 등 경제적인 ‘기적’을 일궈냈다.-한겨레신문, 2천년 유랑 유대인 이스라엘 건국 50돌, 1998년 4월 30일
전 세계 모든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께서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루시며 예언의 말씀을 주신 이유를 알아야 한다. 과연 무엇을 알려주기 위해서 역사 속에 사라진 이스라엘을 다시 소생시켰는가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마 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결국 약 1900년 전 역사에서 사라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다시 독립시키신 것은 예수님 재림 시기를 알려주시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계 3:12, 20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이스라엘 민족은 오랫동안 하나님과 함께하며 그들의 역사의 흥망성쇠를 만들었다. 그리고 1948년 5월 14일 유엔의 자유투표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국권회복에 대해서도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기록이 결코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임을 알아야 한다. …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생명의 새로운 시작) 잎사귀를 내면 (이스라엘 국권회복) 여름(마지막 때)이 가까운 줄을 아니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하나님의 전도)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는 건 나무에 생명이 돋아날(이스라엘의 국권회복) 즈음, 인자가 문 앞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THE CHRISTIAN PRESS, 제1977호 2002년 5월 6일
성경이 증명하는 재림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이 재건되는 해인 1948년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예언대로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무화과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이 소생한 1948년에 초림 예수님과 같은 30세 나이로 침례를 받으시고 새 언약의 복음을 전파하셔야 한다. 즉 육적 이스라엘의 독립을 전 세계에 알리시고 영적 이스라엘에서도 동일하게 실현함으로써 재림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예언을 알려주신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예언이다. 로마를 통해 이스라엘이 멸망당하였으며 불가능할 것 같은 독립이 기적적으로 일어난 일들 모두가 하나님의 예언 속에 진행되었던 것이다. 세계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예언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4. 재림의 사역과 다윗왕의 예언
성경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명할 때,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알리기보다는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 알리고 있다. 이는 암행으로 오셔야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모세나 고레스, 멜기세덱 같은 여러 예언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장차 신약에 나타날 그리스도의 걸어가실 길을 알리시고 있다. 즉 그들의 행위나 생애를 통해서 비밀리에 임하실 그리스도의 길을 알리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적 인물들의 행적은 표면적으로 드러났을지라도 그들의 이름이 구원자와 결부시켜 명시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에 다윗이 예수님과 결부되어 증거되어 있다. 그만큼 다윗에 대한 예언은 그리스도를 증명함에 있어서 확실한 것이다.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다윗은 예수님을 표상하는 예언적인 인물이다. 이제 다윗에 대한 부분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로 하자.
[호 3:5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말일에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스스로의 신앙이나 열심으로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찾아 섬길 때, 구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호세아 선지자는 다윗 이후에 등장한 선지자이므로 실제 다윗을 언급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언적인 다윗이 누구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눅 1:31-32 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다. 즉 예수님은 예언적인 다윗왕의 사명을 지니고 육신으로 오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생애 면에서도 육신적 다윗왕과 일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입증하기 위해 다윗을 세우셨으니 어떠한 점이 일치하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삼하 5:3-4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다윗은 삼십 세에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고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그렇다면 예언적 다윗인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길을 걸으셔야만 한다. 영적 유대인의 왕(요 18)으로 임하신 예수님께서는 삼십 세에 영적 기름부음인 침례를 받으시고 천국 복음을 가르쳐 주셨다(눅 3:21). 예수님께서 20세에 혹은 25세에 침례를 받으실 수도 있었지만 30세에 침례를 받으신 기록은 다윗왕의 예언을 확실하게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즉 다윗왕과 예수님은 예언과 예언성취 관계에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운명하심으로 인하여 복음 전파를 3년밖에 전하시지 못하셨다. 30세에 왕위에 등극해서 70세까지 사십 년간 통치를 했던 육신적 다윗왕과 예수님과는 육신적 생애 면에서 거리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계 5:1-6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 어린양(예수님)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예수님께서 다윗의 입장으로 오신 것은 사실이지만 다윗의 생애를 이루시는 데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 예언적 다윗으로 40년의 복음 생애를 걸으셔야 하지만 3년밖에 복음을 전파하시지 못하셨으니, 육신적 다윗왕과는 생애 면에서 37년이라는 기간의 격차가 있는 것이다. 37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임하실 예언의 말씀이다. 두 번째 임하실 예언의 사명 역시 초림 때처럼 인류인생들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구원 주시려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의 증표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어떠한 근거를 통해서 하나님이심을 알아볼 수 있는지 살펴보자.
[사 55: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하나님께 받는 확실한 은혜! 우리 영혼이 살 수 있는 구원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긴 언약, 영적 다윗왕만이 가져올 수 있는 영원한 언약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히 13:20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 이 영원한 언약은 하나님의 희생의 피를 수반하고 있다. 이 영원한 언약은 새 언약 유월절로 드러난 것이다.
[눅 22:15-20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리스도인들을 살리기 위한 영원한 언약은 하나님의 희생의 피가 어린 새 언약 유월절이다. 영원한 속죄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에게 달려있다. 구약의 짐승의 피의 제사로는 미약했으며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이다. 영원한 언약인 유월절은 오직 그리스도만이 가져올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재림 그리스도의 증표가 된다.
하나님의교회(총회장김주철목사)-안상홍님&하늘어머니
두번째라고 했습니다. 첫번째가 있으니 두번째라고 하신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은 첫번째 사람되어 오셨고 지금 이시대 오신 재림예수님은 두번째 사람되어 오신 것입니다.
답글삭제육체의 재림이 없다면 구원에 이를 자가 아무도 없다는 말씀입니다.하나님을 열심히 믿었는데 구원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육체의 재림이 있은 후에 최후의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증고하고 있습니다.
답글삭제내 속에 속사람(영혼) 이 존재 할까요?
답글삭제영혼이 존재 한다면 사후세계(영혼 연옥 극락 천국 지옥 심판 예수님) 가 존재 할까요?
사후 세계가 존재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나요?
성경 책에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행위 따라 심판을 받고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간다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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