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8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안증회0-십자가 숭배는 우상 숭배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는 우상인 십자가를 세우거나 숭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총회장 김주철 목사)는 성령 안상홍님과 신부 하늘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초대교회 진리인 새언약을 지키며 전파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안상홍님&하늘어머니

십자가 숭배는 우상 숭배다

오늘날 세상 교회에서는 십자가는 우상이 아니라 교회의 상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우상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결코 교회의 상징이라는 변명으로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십자가 숭배는 우상 숭배임을 성경 말씀을 통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하신 십계명 중 둘째 계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출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께서 형상을 만드는 것은 괜찮고, 절하고 섬기지만 말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 어떤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여기 ‘아무 형상이든지’라는 말씀에서 십자가만큼은 예외라고 하셨습니까? 십자가 형상은 만들어도 괜찮다는 말씀이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상 숭배를 엄중하게 금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26: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목상이란 나무로 만든 형상이고, 주상이란 기둥 모양의 형상압니다. 그리고 석상은 돌로 만든 형상입니다. 이와 같이 나무나 돌과 같은 물질로 만들어 심기는 형상이 우상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어떻습니까? 십자가도 나무나 금속 같은 물질로 만든 우상일 뿐입니다. 그것은 어떤 능력도 없으며 다른 모든 우상처럼 사람의 손으로 조각하고 만들어 세운 것에 불과합니다.

렘 10:2~5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기둥(허수아비)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형상을 위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행하는 우상 수배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허수아비 같아서 사람에게 메임을 입으며 화나 복을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세상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자동차나 몸에 마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며 위안을 삼는데, 그것이야말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에 그대로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단지 교회의 상징이라고 강변해도,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실상 십자가를 세우는 교회의 대다수의 교인들은 십자가를 신성시하고 십자가에 신비한 능력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십자가를 만들어 세우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신27: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은밀히 우상을 세우는 자는 무엇을 받는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십자가 같은 우상을 세워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자들의 결말을 살펴봅시다.

렘 2:27~28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치 하니하다가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리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이처럼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나무나 돌로 만든 우상들을 신으로 섬기다가 결국 하나님께 저주를 받고 멸망당했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오늘날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신성시하는 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과거 우상 숭배에 빠졌던 사람들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심기는 우상에 불과합니다  그런 십자가를 경배하는 교회가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예수님 이후 수세기 동안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신학사전을 살펴봅시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Baker's 신학사전,491쪽)

이처럼 십자가는 콘스탄틴 시대에 기독교가 공인되어(313년)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우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숭배에 대해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민 21:4~6 백성이 호르 산에서 진행하여 홍배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 결과 많은 백성들이 불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뒤는게 회개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민21:7~9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죽어가던 자들이 어떻게 살게 되었습니까?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봄으로써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놋뱀 자체의 능력이 있어서 살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이 그들을 살린 것으로 생각하고 오랫동안 놋뱀을 숭배하였습니다.

왕하 18:3~4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 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 시대는 모세 시대부터 약 8백 년이 지난 때입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놋뱀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우상 숭배를 타파했던 히스기야는 그 놋뱀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고 말했습니다. 느후스단은 난하주에 보면 놋 조각이란 뜻입니다. 놋뱀이 단지 놋 조각에 불과한 우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역사에서 놋뱀 사건은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실 구원의 역사에 대한 예언입니다.

요 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들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놋뱀처럼 나무 위에 들린다는 것은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시대 놋뱀을 든 역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실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시대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놋뱀을 쳐다봄으로 살아났던 역사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살아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준 것은 놋뱀 자체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놋뱀이 놋 조각에 불과한 우상이라면 십자가도 나뭇조각에 불과한 우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육신적으로 보이는 놋뱀을 섬겼듯이, 오날날의 많은 사람들이 심자가에서 흘리신 에수님의 피로 약속된 유월절 떡과 포도주는 무시하고 십자가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구약시대 종교개혁자였던 히스기야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히스기야가 놋뱀을 숭배해왔던 이스라엘의 오랜 우상 숭배의 관습을 깨뜨린 것처럼, 우상 숭배에 불과한 십자가 숭배사상을 깨뜨려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숭배는 우상 숭배이므로 십자가를 세우거나 섬기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징공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상 숭배를 금지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주신 새 언약을 믿고 따름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생의 축복을 받읍시다.


하나님의교회***★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던지시는 삶에 대한 이 근본적인 질문과 그 해답을 자신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풀어갔다. 소설의 내용이다.


천사 미하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인간의 모습으로 하늘에서 추방당했다. 하나님께서는 미하일에게 다시 하늘 천사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으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첫번째 인간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두번째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번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은 한 구두 수선공을 만나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었다. 그리고 수선공의 집에서 일을 도와주며 만나게 된
거만한 부자를 통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도 찾게 됐다. 즉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죽음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후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미하일은 쌍둥이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신발 가게로 들어
오는 여인을 통해 마지막 세 번째 질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깨닫는 순간 미하일은 다시금 천사의 모습으로 변했다.

미하일의 모습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가리켜
하늘에서 잃어버린 자이며 하늘 죄인이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9:10, 마태복음 9:13).
이 죄인들을 다시 하늘의 영광된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셔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주셨다.

첫번째,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답은 타인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다. 이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국,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셨던
것처럼, 타인의 생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사도행전 5:42)

두 번째,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죽는 시기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죽음의 시기를 알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성경을 통해 알려주셨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언 27:1)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마가복음 1:35)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7)

마지막 세 번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일이 찾은 답은 ‘사랑’이었다. 그는, 자녀를 잃은 여인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보듬어 키우는 모습을 통해,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평생을 함께해주지도 못하는 사랑을, 미하일은 인간이 사는 이유이자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사랑을 알려주신 분이 있다. 바로 예수님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죄인인 우리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선택하셨다. 이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이다. 이 사랑보다 더 크고 깊은 사랑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 답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산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 지금 이시대에는 어머니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사랑)을 품도록 가르치신다.

『13가지 ‘어머니 교훈’ 속에는 ‘주는 사랑’을 비롯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세, 아름답게 보는 마음, 양보와 겸손, 감사, 인내, 순종, 섬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어머니 교훈’을 실천하며 어머니를 본받아 가정과 사회에서 바르게 살고자 노력한다. 어머니께서 그러신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어머니의 인도에 따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간다. 어머니의 일생을 배워간다.